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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수가 서려 있는곳
이 름   박순옥 기자
제 목   장외과
URL   http://
파 일   file0-3111189754281.jpg(171 Kb),  file1-9531189754281.jpg(66 Kb),  

 

젊음을 의사로 시작 50여년동안 의술  
국내최초 폐수술 그동안 수술만도 1천여명 집도



장외과. 작년에 휴업에 들어갔다. 원장 장명규(76)씨가 건강에 이상이 생기자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남을 건강하게 할 수 있겠는가”라는 자책감에 의사로서의 막을 내렸던 것.    현재 영화동의 3층 건물은 1973년 9월 1일 개원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나, 문이 닫힌 모습에서 수많은 애환을 읽을 수 있다.


 장명규 원장. 남원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남대 의과대학을 거쳐 육군 군의학교 입교, 1957년 육군병원 흉부외과에서 근무하면서 진료를 시작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폐수술을 집도한 의사로 유명하다. 지금은 새로운 기계도 많이 개발되고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많이 하지만 당시에는 수술을 하는 의사가 없어 전국에서 환자가 찾아와 그동안 1천여명의 폐를 열어보고 고쳐낸 대의사이다.

 68년도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흉부외과 부분 1호박사학위를 취득한 장원장은 또 미국 흉부질환의 회원증을 갖고 한국에 나와 있는 미군들을 상대로 미군부대 자문의사를 25년째 맡아오기도 했다. 

 군산과의 인연은 당시 청구목재 회장의 장녀인 고영식 여사와 결혼하면서 군산에 안주, 1973년 ‘소생은 미국에서 선진의술을 연마하고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직과 동 부속병원 부원장으로 재임시에 학술적 연구와 임상경험을 토대로 하여.......시민우환의 파수꾼이 되어 질병없는 명랑한 복지사회에 이바지 하고자....’라는 개업문과 함께 영화시장 맞은편에 ‘장외과’를 개업하게 됐다. 


 이와 같은 개업문에 나타난 정신을 장원장은 그대로 실천하는데 인색함이 없었다.
 
 특히 그가 베푼 인술은 지금도 많은 시민들 입에서 자연스럽게 회자되고 있다. 
 
 폐렴과 결핵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무료로 시술한 예는 수를 헤아리기 어렵고, 의원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의 10%를 불우한 환자를 돕는데 사용했으며, 국제라이온스클럽 총재 등 남다른 사회봉사활동으로 소년소녀 가장돕기, 불우노인돕기, 도서 및 농촌 진료서비스 등 크고 작은 행사에는 항상 장원장이 없는 경우가 없었다.
 
 그의 봉사활동은 1980년 대통령 포상을 비롯하여 법무부장관포상 등 200여 차례의 표창과 감사패가 대변해주고 있다. 

 장원장은 언론에도 큰 관심을 보여 전 호남매일신문의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또한 장원장은 역대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한 적이 많고, 고건전 국무총리와 막연한 친분관계를 맺고 있어 일부에서는 ‘정치의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장원장은 학창시절 웅변을 하고 학도호국단 대대장을 역임하면서 정치의 꿈을 키워 왔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러한 자신에 대한 평가에 의사는 환자가 어느 부위가 아픈가를 듣기 전에 심리상태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국민 속에 들어가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는 자신의 소신에 따른 ‘당연시’ 된 칭호라며 개의치 않는다.
 
 의술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봉사라는 사명감을 갖고 정성을 쏟았던 장명규 원장. 문 닫힌 장외과 건물이 유난히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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