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빈터에
백운순<청사초롱 회원>
책갈피에서
쏟아지는 마른 꽃잎이
갈꽃 향기를 풍기고 있다.
하나씩 주우면
파아란 기억이
순은의 빛깔로 피어난다.
오래 비어 두었던 자리에
덧난 상처가 하나씩
나의 길을 펴더니
그 밤의
별이 머물던 창가에서
땀과 눈물로 엉겨
내 사랑을 어루만지고 있다.
시감상-----------배환봉
세상살이는 같은데 어려서 고생은 어찌해서 아무리 혹독했다 해도 잊어질 뿐 아니라 되려 아름다운 기억으로까지 승화되는데 어른이 되어서는 그 같은 고생이 아니어도 짜증스럽기만 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아마도 꿈을 잃은 허전함이 아닐런지... 소녀 때 예쁜 장미꽃이나 네 잎 클로바, 노란 가을 은행 잎, 단풍잎들을 책갈피에 따 넣으며 아름다운 꿈에 젖던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백시인도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우연히 편 책갈피에서 마른 꽃잎이 와르르 떨어져 한 잎 주어들다 그 때의 아름다운 기억이 되살아난다. 하지만 아득히 멀어져 간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미래를 꿈꾸며 아름다웠던 그 시절로부터의 시간의 빈터. 거기 살아온 갖가지 시름 내려 놓고 잠시나마 그 빈터에 머물고 싶어하는 마음이 보인다. 역시 인간에겐 꿈이 있어 그나마 아름다움이 있나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