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파요”

경비실 문을 두드리던 어두운 낯빛의 왜소한 중년의 한 사나이가 건넨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관리사무소 김 주임이 관리비도 연체되고 꽤 오랫동안 아파트를 오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며 집으로 한 번 찾아가볼까 했던 바로 그였다.

경비아저씨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들은 김 주임이 곧바로 올라가 초인종을 누르자 한참 후에 그가 문을 열었다. 얼굴은 거뭇거뭇하고 생기도 기력도 하나도 없어 보였다. 마치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 같아 마음이 급해졌다. 그는 집에 쌀도 라면도,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작은 목소리로 전했다. “무조건 도와줘야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사업실패와 병으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던 한 입주민이 이웃의 따뜻한 도움으로 병 치료에 나서고 정부지원을 받는 등 새 희망을 찾아 각박해 보이던 세상을 환히 밝혔다.

그는 오랫동안 중국집 직원으로 일했었다. 지난해 함께 일하던 직원이 그동안 모은 돈으로 중화요리점을 개업하자고 했고 동료를 믿고 돈을 맡겼지만 동료는 투자금을 갖고 도주해버렸다. 다시 일자리를 구하지도 못한 채 두통에 복통은 심해져 갔지만 문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조금 남아있던 돈도 떨어져 갔고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아지면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지자 한 걸음 겨우 내딘 곳이 아파트 관리사무소였다.

다행히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이 분야 베테랑이었다.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 특성상 입주민들의 어려움을 적극 나서 해결해오곤 했다. 우편물을 가져와 읽어달라는 분, 시 민원을 대신 전해달라는 분 등 워낙 주민들의 요구가 다양해 통장과 주임은 사회복지를 별도로 공부해 함께 자격증까지 취득했을 정도다.

관리사무소 김 주임이 조촌동사무소에 연락을 해 도움을 요청했고, 조촌동 맞춤형 복지팀이 그의 건강 상태를 확인한 결과 평소 앓고 있던 혈압 문제와 함께 중증 인지 장애에 해당하는 초기 치매 이전 단계임을 확인했다.

이런 상황을 듣게 된 누가병원 정동규 원장이 곧 바로 입원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누가병원 의료진은 치료와 식사에 정성을 다했다.

그는 4일 간 입원하며 기력을 회복했고 같은 아파트 주민들은 쌀이나 식료품들을 전달했다. 시는 긴급생계지원금을 지원했고 기초수급자 선정 중이다.

사랑방 같은 관리사무소에서 한 주민은 “이런 일은 마음이 없으면 못하는 일이지, 관리사무소 일만 해도 얼마나 바쁜데 이것은 업무 외적인 일이잖아”라며 “가끔 보면 어떻게 저렇게 발 벗고 나서서 하나,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사정도 하고, 시에서 표창을 줘야지 한 사람을 살렸잖아”이라고 전했다.

이웃들의 조그만 관심과 마음이 더해져 겨우내 칙칙했던 회색빛을 털어내고 봄꽃처럼 사랑이 톡톡 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