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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시론] 사라진다는 것

2022-08-31 17:20:02

 

최성철 수필가

 


새로 이사한 집이라 나름대로 만족감과 성취감에 젖어본다. 소파에 앉아 창문을 연다. 첫눈에 00장례식장 간판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다. 직선으로 500여 미터 정도 되는 건물 4층 꼭대기에 설치한 간판이다. 크기는 개당 가로세로 3m는 족히 넘을 것 같다. 밤이 되자 밝은 조명으로 치장하고 역시 또렷이 나를 내려다본다.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마지막 이별을 고하고 헤어지는 장례식장 아닌가. 내 삶의 마지막 둥지를 고르고 고른 집이 하필 장례식장과 마주하다니 불현듯 늙은이 특유의 방정맞은 생각이 앞선다.

  자전거를 타고 장례식장을 향해 집을 나섰다. 먼저 눈에 띄는 게 너른 주차장과 도로와의 경계를 이루는 화단이 잘 가꾸어져 있다. 다듬어진 소나무와 사철나무가 마지막 가는 영혼을 위한 엄숙한 분위기를 살리려는 듯 다소곳이 서 있다. 그 아래에 천인국, 한라구절초, 금계국, 코스모스 등의 꽃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피고 지고를 연출하는 느낌이다. 어쩌면 저승으로 떠나는 혼들이 끝내 못 잊어 이승에 남겨두고 가는 아쉬움의 흔적일까. 아무튼 장례식장 화단의 꽃들은 다른 여느 곳의 꽃과 달리 어딘지 모르게 숙연한 모습을 보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장례식장이 갑자기 헐리기 시작했다.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에 대한 사연이나 속 사정은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사 온 집이 하필 장례식장과 마주하느냐고 속앓이를 했다는 점이다. 괜한 염려가 염려를 낳는다는 말처럼 지레 걱정한 섣부른 판단을 스스로 나무란다.     투입된 중장비는 먼저 화단의 나무들을 캐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값나가는 나무부터 구덩이를 파고 밑 둥지를 둥글게 싸 트럭에 싣는다. 비까지 내려 질퍽거리는 화단의 꽃들은 속된 말로 별 볼 일 없는 신세다. 밟히고 부러지고 육중한 기계에 깔려 으깨지고 흙에 묻히며 뒤죽박죽 나뒹굴고 있다. 

  그 와중에 주차장 아스팔트와 화단 경계석 사이 아주 좁은 틈에서 용케도 자란 꽃이 눈에 띈다. 접시꽃이다. 땅바닥에 누운 것을 보니 내 키를 훌쩍 넘을 정도다. 접시꽃은 밑에서부터 아름답고 화려한 접시 같은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고 있다. 접시꽃은 위로 흥부네 자식들을 연상케 하는 수많은 꽃봉오리를 달고 있다. 그런 접시꽃이 굴착기의 내둘림에 허리가 동강 나고 부러진 채 땅바닥에 나뒹굴고 오가는 인부들 발길과 자동차 바퀴에 짓밟혀 성한 것이 없다. 너무 안타까워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대로 뿌리가 붙어있는 것들은 추려서 비닐 주머니에 주워 담았다.

  경로당 창 너머로 샛노란 천인국이 방긋거리며 고개를 들고 넘어다본다. 까치발을 한 단발머리 소녀의 나풀거리는 머릿결처럼 보일 듯 말 듯 한다. 그 옆에 아직도 장례식장 화단에서 입은 생채기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허리 굽은 코스모스 몇 송이도 서로 어깨를 걸고 분홍빛 낯으로 방 안을 굽어다 본다. 죽음 직전까지 내몰려 영원히 사라질 직전에 구해 다시 살아난 생명이다. 뙤약볕과 폭염의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며 정성껏 심고 물 주고 가꾸어 살려낸 그들을 보니 반갑고 신기하고 보람차다.

  갑자기 사라지는 장례식장을 보면서 문득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사라짐에 관한 생각을 해 본다. 유행가 노랫말처럼 ‘백 년도 살지 못하면서 천년을 살 것.’처럼 욕심부리고 남 탓하고 죽기 살기로 몸부림치며 살았던 세월이 두렵다. 그렇다. 순서와 시기의 차이일 뿐 누구나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꼭 사라진다. 조용히 곱씹어 볼수록 그 무게감을 온몸으로 느낀다. 약한 것들에 대한 배려와 아량을 베풀며 사라진다는 진리 앞에 부끄럽지 않을 겸손의 미덕을 쌓아야 할 것 같다. 

 

 

 



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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