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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시론] 갈등의 미학

2022-06-20 11:41:51

 

최성철 수필가

 


현관 앞이 너무 휑하여 그늘 막을 설치하기로 했다. 먼저 철골로 지주를 세웠다. 평소에 보아 두었던 등나무 군락지에서 마침 칡이 가까운 데 있어 함께 가져다 심었다. 몇 년 사이에 등나무와 칡이 철골 지주를 타고 올라 위를 완전히 뒤덮을 정도로 생육이 왕성했다.

고전에 해박한 k 선생은 “칡은 왼쪽으로 감고 올라가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간다.”라며 칡과 등나무 덩굴이 뒤엉키듯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이 대립되어 생긴 말이 ‘갈등葛藤’이라 했다.

문득 철골 지주를 감고 올라간 줄기를 살펴보았다. 보디빌딩 선수의 단단한 팔 근육을 연상하는 칡과 등나무 줄기는 철골 지주를 온 힘을 다해 붙들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칡은 오른쪽으로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고 올라가는 데 칡꽃은 하늘을 향했고 등나무 꽃은 땅을 향했다. 칡잎은 넓고 등나무 잎은 좀 긴 편이다. 칡과 등나무는 어쩌면 그리도 반대이면서 서로 엉켜 죽기 살기로 세력 싸움에 몰두할까.  

그런데 칡과 등나무는 사람들이 생각하듯 그렇게 사이가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갈등의 염려와 걱정 속에도 보석 같이 빛나는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우선 둘 다 꽃은 자주색으로 진한 향기를 뿜어대며 달콤한 꿀로 벌들을 불러들이는 점이 아주 닮았다.

그뿐이랴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무엇인가 붙들고 오르는 선의의 경쟁도 본받을 만하다. 그리고 서로 세력을 키우는 덕에 햇빛은커녕 비가 내려도 샐 것 같지 않게 촘촘한 그늘 막을 제공해 준다. 무더위가 아무리 맹위를 떨쳐도 칡과 등나무가 만들어 주는 그늘진 평상은 낮잠 한숨 자기에 안성맞춤으로 인간에게 베푸는 최고의 미덕이다.

어느 날 갑자기 예년에 없던 강력한 태풍에 그늘 막은 힘없이 왕창 넘어지고 말았다. 처음부터 철골 지주를 부실하게 세운 것이 문제였다. 약한 철골 지주는 칡과 등나무의 처절한 싸움을 이겨내지 못했다. 칡과 등나무의 싸움에 철골지주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바람에 둘 다 억지로 생을 마감했다. 안타깝게도 닮은 점이 많은데도 이를 잘 살리지 못하고 칡과 등나무는 결국에 공멸한 셈이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여야의 정치적 갈등,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고부갈등, 노인과 젊은이의 세대 갈등,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의 빈부 갈등 등등. 특히 정치인들 중에는 갈등의 골을 파서 편 가르기를 서슴지 않고 자행하는 부류가 있다. 갈등을 부추기는 자들은 너무나 당당히 자기가 유식 똑똑하다고 얼굴 내밀고 이득을 보려한다. 문제는 이런 저질의 스펙에 휩쓸려 같이 놀아나는 하등 동물 같은 족속들이 더 큰 문제다.

그러고 보니 일부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나라도, 회사의 경영도, 어떤 조직의 운명도 이와 다를 바 없는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갈등은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결국은 둘 다 파국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나와 당사자뿐만 아니라 관계가 있는 많은 주변 사람에게도 수없는 고통과 시련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인간관계에서도 갈등의 골을 메워 치유하는 지름길은 화해와 용서, 이해와 배려이다. 말은 쉽고 실천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갈등의 치료는 결심보다 결단이 필요하다. 결심은 누구나 쉽게 몇 번이고 할 수 있지만 실행하려면 머뭇거리는 변수가 많다. 결단은 자존심 접는 최후의 선택이다. 내가 먼저 “잘못했다. 미안하다.”이다. 이것이 ‘사과’다. 중요한 것은 사과는 글자에 받침이 없듯 토를 달면 헛것이다. 토를 달면 진정성이 없어 오히려 더 깊은 상처로 남기 마련이다. 다만, 이렇듯 자존심 접고 먼저 진정한 사과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를 끝내 무릎을 꿇리려 하거나 항복을 받으려는 속 좁은 인간이라면 과감히 기억에서 지우자. 사과와 화해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세가 더 중요함을 서로가 인식해야 한다.

엉킨 실타래는 풀어야 실을 사용할 수 있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 했다. 어렵지만 갈등이 해소되면 그 맛은 보들보들하고 달콤한 꽈배기 이상의 맛이다.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 뒤끝이 후련하다. 쇳덩이 보다 더 무겁던 마음이 깃털같이 한결 가벼워 기분까지 상쾌하다. 매일 밤 뒤숭숭했던 꿈자리가 사라지고 두 다리 쭉 뻗고 잠 잘 자는 덤까지 따라온다.

아직도 이상하게 꼬인 갈등에 마음 괴롭다면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먼저 눈 딱 감고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결단을 내리자. 이것이 곧 갈등의 미학이다.

※본 내용은 본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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