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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단상)어머니

2020-06-22 10:14:04

 

고재찬 군산대학교 산학협력단 교수

 



누구에게나 어머니가 있다.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어머니의 은혜는 높은 하늘보다 더 높고 넓은 바다보다 더 넓다고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그 정도로 표현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내가 12살인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는 군복무중 얻은 사고후유증으로 모든 짐을 어머니에게 맡기시고는 홀로 가시었다. 누나와 나, 그리고 여동생 3,  5남매로 막내가 3살 때였다. 고향을 떠나온 터라 이웃집 소유의 산에다 장사를 치르고 친척은 다 돌아가니 우리 식구만 남았는데 부엌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이제 우리 어떻게 사느냐고 하자 어머니는 어떻게든 우리 아들하고 잘 살아야지 하신다.

유산으로 여기저기에서 튀어 나오는 빚, 다랑이 논과 산비탈의 밭, 그리고 초가집 한 채가 전부였다. 시골의 작은 동네 제일 뒷집이라 밤이 되면 왜 그렇게 무서운지....

지금처럼의 사회보장제도는 상상조차 못하던 시절 양식이 없어 봄에 장리 빚을 내 끼니를 연명하다가 가을걷이하여 5부 이자를 얹어서 갚다 보니 그야말로 춘궁기 보릿고개의 연속이었다. 어머니는 행상을 시작하였고 누나와 여동생은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야만 했다.

아버지가 없는 삶은 모든 게 약점으로 비쳐지곤 하였다.

가만히 서 있는데도 못 먹어서 기운이 없나 보다 하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애비 없는 자식이라 버릇이 없다는 말을 듣기 일쑤였다. 더 겸손하게 인사도 잘 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은 나에게는 아픈 몸부림으로 남았기도 하였고 가족이나 자식들에게 책임을 다 하는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다짐을 남모르게 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나는 아들이라고 중·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졸업 후 나 또한 바로 공채 시험에 합격하여 가사에도 보탬이 되고 동생들을 공부하는 데에도 힘을 합했다. 첫 월급을 타서 어머니 내복을 사다드렸는데 지금도 기억이 새롭다.

직장을 군산시로 옮기고 결혼도 하고 조그마한 집을 전세로 얻어 함께 살게 되었는데 신혼의 재미도 누릴 겨를도 없이 이번에는 내가 병을 얻어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다.

병원에서 월요일 저녁마다 들려오는 찬송소리,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소리는 들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울음 소리와 함께 여운으로 어우러져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계속되었다. 아내는 육아와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여 힘을 보태주었고 나는 오랜 시간의 아픔을 이겨내고 다시 건강을 찾게 되었다. 아내가 앞마당에 심어 놓은 케일이 몸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어머니는 매일 아침 손수 즙을 짜 주시면 마시는 것이 하루의 일과 시작이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삶은 그 뒤로도 두 딸을 암으로 먼저 보내는 일까지 고스란히 다 감당하시었다. 결국은 모든 것을 잊고 싶으셨는지 치매를 오래 앓으시다가 귀한 생을 마감하시었다. 우리 어머니는 그런 분이시었다.

어머니는 한 알의 밀알처럼 가셨지만 그 자손들은 반듯하게 성장하여 슬하에 장로도 여럿 나오고 교수도 나오고 막내는 목사가 되어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바쁘게 일하고 있다. 그의 세 아들은 모두 목회자의 길을 가고 있다. 모든 자손들이 나름 그 분야에서 인정을 받아 온 것은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의 결과이리라.

어머님 살아 계실 적에 잘 해 드릴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와 새벽녘까지 잠 못 이루며 어머니가 가신 하늘을 올려다 본다.

어버이날 둘째가 정성어린 선물과 노란 카네이션을 사 들고 먼 길을 달려왔다. 큰 애는 다음 주에 온다며 치킨을 보내와 여럿이 모여 함께 나누어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이루고자 노심초사하며 기뻐하기도 하고 애타기도 하고 때로는 안타까워하기도 하는 희노애락의 시간을 보내지만 우리에게 가정이 있음이 최고의 행복이고 돌아갈 집이 있음이 얼마나 든든한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 곳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우리의 어머니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계절의 여왕 신록이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5월,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다.



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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