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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돈헌 임병찬 선생 유해 군산으로

2019-06-03 15:37:20

 

최규홍 군장대 석좌교수, 군산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돈헌 임병찬(1851-1916) 선생은 현 옥구읍 상평리 광월마을(남산 밑)에서 출생했다. 선생은 물론 동생 임병대, 아들 임응철, 손자 임경, 임진 등 3대가 함께 항일 구국의 횃불을 높이 치켜들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이다.

16세에 전주부 식년감시(式年監試)에 장원급제 했으나 가세가 빈한해 17세 옥구현 형방을 시작으로 향리의 길을 나섰다. 32세 되던 해에는 두 번째 아내 고향인 산내면 장금리 영골(영동)로 이거했다. 39세에 낙안군수로 부임해 각종 폐해를 바로 잡아 선정을 베풀었으나 1년 남짓 짧은 관직생활을 마치고 귀향후 1893년 다시 산내면 종성리로 이사했다.

1894년 12월 동학농민혁명 2차봉기 때 청주성 전투에 패배한 후 산내면 종성리 매형 서영기 집에 피신한 김개남을 임병찬은 관에 고발했다. 당시 임병찬은 성리학적 관점에서 근왕의식(勤王意識)이 투철한 퇴임 관리로 김개남을 대한제국의 왕조 질서를 흔드는 동학의 비도(匪徒)로 간주했을 것이다.

임병찬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결사대를 조직해 일본의 고위당국자와 담판함으로써 을사늑약의 파기를 요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최익현과 사제지간의 인연을 맺으면서 면암의 의견에 따라 수정되었고 임병찬은 면암의 의견을 수렴해 즉시 의병을 거의할 것을 계획했다.

1906년 병오년 윤4월 13일 태인 무성서원에서 최익현의 강회가 항일의병의 기폭제가 되어 태인, 순창, 곡성 등지를 공략했다. 4월 21일 ‘적군이 일본군이 아닌 조선군임을 확인하고는 동족상잔은 할 수 없다’는 면암의 의견에 따라 해산 명령을 내렸다. 6월 25일 최익현과 임병찬은 대마도에 유배되어 면암은 단식항쟁으로 순절, 임병찬은 1907년 유배가 해제되어 환국했다. 

임병찬의 독립의군부 활동은 대마도 유배에서 돌아와 재기를 기다리던 중 고종황제로부터 ‘독립의군부 전라남도 순무대장’으로 임명하는 칙령(1912년 9월 20일)을 전달 받고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는 1912년 12월 전라남북도 독립의군부 순무대장, 1913년 2월 전라남북도 순무총장겸 사령장관으로 임명되어 호남지방 조직을 완료했다. 이 때 군옥지역에서도 임피군인 17명, 옥구군인 16명이 독립의군부에 참여한 사실이 있다.

임병찬은 1914년 2월 상경해 독립의군부를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대시켜 대한독립의군부의 편제로 재조직했다. 임병찬은 그 총사령이 되어 일제의 내각총리대신 총독이하 모든 관헌에게 ‘국권반환요구서’를 보내 일제합방의 부당성을 천명했을 뿐만 아니라 외국에 대해서도 일제 통치에 한국민이 불복하고 있음을 표명하는 한편 국민대중에게 국권회복의 의기를 일으키려는 항일의병운동을 계획했다.

그러나 1914년 5월 동지 김창식이 검거되어 독립의군부 조직이 탄로나 임병찬 이하 관련자들이 대거 체포당해 실패하고 말았다. 임병찬은 옥중에서 거사 실패를 분개해 3차례에 걸쳐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고 거문도에 유배돼 옥고를 치르던 중 1916년 5월 23일(음력)에 유배지에서 순국했다. 유해는 6월 태인 본가에 운구되었고 겨울에 순창 회문산 남록에 안장되었다.

오는 6월 25일(윤5월 23일)은 임병찬 의병장이 순절한 지 103주기를 맞는 날이다. 5월 초, 임씨 종친 임정연(84세)과 임홍연(90세) 형제, 군산문화원 이부민 이사의 도움으로 순창 회문산 정상(837m)에 모셔져 있는 선생의 묘를 등정 5시간 만에 찾았다. 해방 직후에 건립된 상석 앞면에 묘비명(資憲大夫獨立義軍元帥府 司令總長平澤林公諱炳瓚之墓 乾坐檀紀四千二百七十九年丙戌五月一日不肖孫 鎭 鉉 奉安)이 새겨져 있었다. 애석하게도 봉분은 잔디 하나 없이 잡목만 무성했고 상석은 불안정하고 망부석은 넘어져 땅속 깊이 파묻혀 있었다. 돈헌 선생의 묘지 치고 너무나 황량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하루 빨리 독립유공자 임병찬 의병장 유해를 회문산에서 고향땅 양지 바른 곳으로 모셔 오기를 염원한다. 임씨종중(平澤林氏沃溝德溫宗中)에서도 임병찬 의병장의 성역화 사업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 본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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