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짜 그림에 휘말려 우습게 된 것은 순전히 김 회장 때문이었다. 차라리 모르고 있었으면 행복했을 것이다. 막상 알고 나니 짜증이 났지만 또 한편으로는 늦게라도 진위를 알게 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싶었다.
얼마 전 김 회장의 이순 잔치에 초대를 받고 내가 기분이 좋았던 것은 호텔 같은 곳에서 거창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분의 집에서 간소한 술자리로 마련한다고 해서였다.
사업도 성공했고 가정도 화목해서 평소에 내가 존경하는 분이다. 초대 손님도 몇 사람 아닌 속에 나를 넣어 주었으니 황송하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막상 초청을 받고 보니 마음 한편으로 걱정이 생겼다. 빈손으로 갈 수가 없어서였다.
봉투에 축의금을 넣자니 받지 않을게 뻔하다. 궁리 끝에 오래 전부터 소장을 하고 있는 P화백의 산수화 한 폭을 들고 가기로 했다. 김 회장은 예술에도 조예가 깊은 분이니 반겨 받아 줄 것이라고 믿었다. P화백은 호당 몇 십만 원씩 하는 특선 작가다. 나도 그 명성에 압도되어 아끼면서 갖고 있던 그림이었다.
내가 유명한 그분의 그림을 소장하게 된 것은 몇 년 전에 잡지사를 했던 덕분이었다. P화백의 그림으로 표지를 낼 때 함께 받아온 소품이었다. 좋은 그림이 내 서랍에서 썩는 것보다 김 회장의 거실에 걸려 있으면 훨씬 어울릴 거라는 생각까지 했다.
잔치 날 즐거운 마음으로 선물을 들고 갔지만 나는 곧 실망을 했다. 김 회장의 큰 거실에는 유명 화가들의 그림이 빼곡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들고 간 그림은 낄 자리도 없었다. 망설여졌지만 달리 준비한 선물도 없는 처지여서 그냥 내놓았다.
김 회장은 덤덤한 표정으로 펼쳐보지도 않고 옆으로 밀쳐 놓았다. 기분이 떨떠름했지만 함께 앉은 옆 손님들이 좋아서 흥겹게 술자리를 하고 돌아온 터라 나는 그 일을 금새 잊어 버렸다.
한데 며칠 후 김 회장 비서가 그림을 들고 왔다. 내게 되돌려 준 것이다. 이유가 가짜라는 것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 이 그림은 분명히 본인에게서 직접 받아온 것이라고 했었다.
뭔가 오해를 한 듯싶었다, 그렇다고 항의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나는 궁리 끝에 그림을 들고 평소에 안면이 있는 화랑을 찾아갔다. 이 그림이 가짜입니까 하고 묻는 내게 화랑주인은 감정 전문가는 아니지만 마침 P화백의 그림을 한 장 갖고 있다고 대조를 해보자고 했다.
꺼내 놓은 그림은 내 소장한 그림과 크기만 다를 뿐 소나무가 그려진 내용은 거의 동일한 산수화였다. 낙관도 똑같았다. 그럼 그렇지, 뭔가 오해가 있었을 것이다. 이게 문제 인 것 같습니다. 화랑주인이 손으로 짚었다. 이 그림의 솔잎이 조금 굵지요? 복사 본에 색칠을 한 것 같습니다. 이분의 그림이야 값이 나가니 복사 본이 많이 돌아다닙니다. 듣고 보니 그럴 듯 하다.
본인한테 직접 받았다는데 복사본일수가 없다. 라고 생각하다보니 내가 직접 받은 것은 아니었다. 사람을 의심해서는 안 되지만 기자가 바꿔치기를 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한 다리 건너 온 것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그럴까? 나는 쓴웃음이 나왔지만 사실이 복사본이라는 데는 할말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진실로 서운했던 것은 설령 내가 보낸 선물이 가짜라 한들 전화 한 통 없이 매정하게 되돌려 보낼 수가 있는가 하는 아쉬움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