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가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만 시경조차 쓰지 않았었다.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해서였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정의감이나 의협심이 어쩌고 하는 말 따위는 잃어버린 지가 오래되었다. 설령 옆에서 누가 죽는다고 해도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면 간섭하고 싶지 않은 것이 요즈음의 내 솔직한 심정이다.
술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다. 한데 양주가 가짜라고 떠들어 댈 때도 웃어 넘기고 말았다. 나는 주로 소주를 먹는다. 먹지도 않는 양주가 가짜면 대수일까 해서였다. 한데 모르고 있었을 뿐 사실은 내가 그 가짜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이다. 먹고사는 농산물까지 가짜 천지였다니 나와 무관했던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먹는 것까지 수입을 해서 가짜로 국내산 표지를 붙여서 판매를 한다는 것이다.
무역이 자유화된 지금 신토불이만 주장하는 것은 욕심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표기만은 제대로 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전혀 다른 토양에서 자란 농산물을 먹고 성장하는 아이들 성격이 변화되어 돌연변이가 되는 것도 걱정이고
내 나머지 생명까지 위협을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 진다. 이대로 넘길 일이 아니다. 새삼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혼자서 이기적으로 사는 동안 주변이 너무 많이 변해있었다. 사람들까지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일년 전에 학교 동창인 친구가 찾아 왔었다. 자식놈 등록금을 빌려달라면서 서예 한 점을 내 놓았다. 친할수록 거래는 분명히 하자는 뜻이었다. 국전에 입선 한 작품으로 빌려 가는 돈의 세배쯤 값이 나간다는 주장이었다.
돈 몇 푼 빌려 주면서 친구에게 담보까지 잡기가 미안했지만 거절을 하지 않고 받아 둔 것은 글씨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바르게 써있어서 한문이 짧은 나도 뜻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보기가 좋았다.
전시회에는 몇 번 가 본적이 있지만 실제로 입선한 작품을 소장해 본적은 없었다. 돈 몇 푼 빌려주고 헛된 욕심을 부리는 것 같아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내가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언제 소장해 볼 수 있을까 싶어 챙겨 둔 것이다.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 한 것이다. 글씨가 욕심나다 보니 은근히 딴 마음까지 생겼다. 빌려 간 돈이 기일까지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내 마음을 알았을까? 고맙게도 친구 녀석은 약속 한날 자가 훨씬 지나서도 돈을 가져오지 않았다. 돈을 갚지 않는 것이 고마운 건 처음이었다. 은근 슬쩍 전화를 해 보았다. 기일 안에 갚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인사와 함께 담보로 대신하면 어떻겠냐는 뜻이었다.
나는 서둘러 액자를 만들었다. 벽에 걸어 놓고 보니 방안이 환하다.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자랑도 했다.
한데 이 글씨가 가짜라는 것이다. 서예평론가의 말이니 믿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가짜란 이유까지 설명해 주었다. 낙관 위에 써진 작가의 이름하고 본문의 글씨필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본문은 정자이고 이름은 초서였다 듣고 보니 나도 알 것 같다.
글씨만 좋으면 그만이지 쓴 사람이 틀리면 어떻고 진짜 가짜를 가려서 무엇할까 만은 기분이 그게 아니었다.
국전 입선 작품이라고 침이 마르게 자랑을 해댄 나만 무식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굳이 따지자면 어디 붓글씨뿐인가? 가수는 모창이 더 근사하고 그림은 복사본이 더 아름답고 문학은 대필이 더 잘 팔리는 세상이고 보면 가짜가 진짜를 이기는 세상이 된 것이 분명할진대 내가 아는 소리를 조금 했다고 무슨 흉이 되랴. 애써 마음을 달래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