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운동 산책긴
이미라- 청사초롱 동인
수풀과 수풀 사이
작은 산과 산 사이
별장처럼
때로는 호텔처럼
집들이 거대하다
무너져 가는
비밀의 통로에서
작은 나무와 풀꽃들이
울고 있다
마른 진흙이 땡볕 아래
얼굴을 찢고
신세계를 맞이하러
웅크리고 있다
산을 뜰로 산책하는
내 복이 분에 넘쳐
풀냄새에 취하다가
멈칫 미안하다
언제 바래어 갈지 모를
숲의 소리 때문에.
감상---------배 환 봉
개혁은 창조이기도 하지만 거기엔 반드시 파괴가 부수적으로 뒤따른다. 나운동이 이렇게 큰 도시 한 켠을 이룰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낮은 산과 둔덕으로 에워 싸였던 곳이어서 나름대로 운치를 자아내던 곳이었는데 지금도 개발이라 해서 계속해서 야산들이 무너지고 있다.
이 시를 쓸 당시만 해도 처음 개발이 시작될 무렵이었는데도 / 무너져 가는 / 비밀의 통로에서/ 작은 나무와 풀꽃들이 / 울고 있다/ 라고 했다. 얼마나 많은 초목들이 뽑히고 밟히었던가? 우리는 누구도 내 일이 아니면 남의 설움을 모른 척 한다.
개혁이라는데 막을 수는 없어도 한 번쯤은 함께 슬퍼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사라지는 것 들에 대한 내 양심의 애도 같은 그런 슬픔. 풀냄새에 취하기가 미안하다고 한 이 시인의 마음처럼.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이 풀들이 오늘 애써 풍기는 이 풀냄새를 즐기고 있다는게 가슴아팠나 보다. 이 시인은 지금 미국으로 이민 간 지 오래이다. 달라진 고국이 보고싶을 것 같아 이 시를 소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