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동 600 번지
이 정 미----글마당 회원
늙은 철탑을 앞으로 두고 걸으면
어느 집 계집 아이가 그려 놓은
커다란 팔방
영명 32번지에서 외산 24-1번지로 이어지는
피난민 판자집 슬라브를 얻고 기와를 얻어내
오늘의 담벼락 역사를 가진 집
저도 모르게 떨어져버린 뾰쪽감 무더기 사이
사람 눈길 무서워 피하는 냥이 한 마리를 만나게 되는 길
지척으로 고추 다듬는 아낙들과
오늘도 출근하지 않은 남편
한숨을 지고 등교하는 아이들
갈라진 틈새 사이로 가난은
자랑인냥 빛이 나는 곳
강보다 낮게
낮게만 모여들어 사는 곳
그렇게 모진 바람
온전히 사람 온기로만 이겨내는 곳.
시 감상------배 환 봉
태양이 아무리 온 세상을 다 비추려 해도 음지는 있다. 전쟁이 아니어도 가난은 물론 있다. 하지만 전쟁으로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빈 손으로 오로지 목숨만 가지고 전쟁 터를 피해 남으로 내려 온 사람들을 우리는 피난민이라는 새 낱말까지 붙여 마음을 더 서글프게 했다.
세월이 반세기를 넘어섰어도 아직 그 이름은 족보처럼 나붙곤 한다. 비단 구암동 뿐이랴만 곳곳에 판자집이나 슬라브 집을 짓고 우선 응신할 수 밖에 없었던 아픔들이었다. 당장 일 터도 없이 막막했을 고통들을 그들이 아니고서는 어찌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러던 집들이 이제 겨우 담벼락 역사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어디 가난이 쉽게 해결되는 것이던가? 벽에 온갖 것을 다 넣어 방온 벽을 하는가 하면 오로지 사람의 온기로만 추위를 이겨내야 하는 판자집 사람들. 하지만 그들에겐 따뜻한 마음이 있어 서로 돕고 힘이 되는 인간애가 있음을 아는 시인이 있어 그래도 온기가 퍼지는 것 같다. 젊은 시인들의 아름다운 세상 가꾸기에 마음이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