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연가
백승연<여류문학 회원·청사초롱 동인>
누가 은지 (銀紙)를 바스락대나 봐.
정적 깨뜨리며 첫 새가 울고
초록빛 풀물은
함빡 이슬을 밟고 서서
이랑 사이
몰래 숨어서 기다린
꺽실한 총각 하나
꼴깍 삼켜 버렸나 봐.
삼베적삼 아직 으스스 어설픈
그런 새벽나절에
단잠 쫓기 듯 달아난
상사초 간드러진 잎사귀
청청한 여름을 기다렸나 봐.
뽕나무 잎은 제철 만나 푸르르고
뽕나무 잎 따던 우리들의 누이 잡아간
저 바람의 악귀
온 백성들은 겨우내
새싹 돋는 보리를 밟았다.
밟힐수록 독이 뻗힌 청보리는
청청한 바람을 가르고
뜀박질로 달린다
달린다.
정적 깨뜨리며 첫새가 울고
누가 은지를 바스락대나 봐.
시감상 ---------배환봉
오죽해야 세월을 유수(流水)같다 하겠는가. 그 가슴 설렁이던 봄날이 어느새 가고 여름이 껑충 뛰어왔다. 가버린 늦은 봄, 푸른 들의 보리 밭 풍경을 다시 보는 것 같아 들뜨는 마음이다. 푸른 들이 얼마나 깨끗하면 세상이 마치 은색 종이 같다 말했겠는가. 그 종이 구기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고요. 그 고요를 깨우는 건 오로지 새벽 종달새 소리뿐인 정막의 푸른 보리 밭. 그 계절을 감당할 수 없었던 청춘 남녀들의 아름다운 사랑의 전설이 베어난다. 뽕 따러 다니다 바람나서 보리밭에 숨어있는 총각 따라 달아난 이야기 한 토막이 들린다. 밟힐수록 강인한 청보리는 어쩌면 우리 민족혼의 화신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백 시인의 시는 늘 이렇게 우리네 토담집 같은 본향을 섬세한 감각으로 노래해 읽는 이의 마음을 잠시나마 향수에 젖어들게 하는 특성 있는 시인이라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