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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정수현
제 목   영남 패권은 히로뽕, 친노 패권은 헤로인 — 노무현의 ‘지역주의 극복’ 호남 고립 통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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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패권은 히로뽕, 친노 패권은 헤로인 — 노무현의 ‘지역주의 극복’ 호남 고립 통한 영남 패권 안정화 노렸다 노무현의 ‘지역주의 극복’ 호남 고립 통한 영남 패권 안정화 노렸다 김욱의 저작 <아주 낯선 상식>을 둘러싼 토론의 쟁점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즉, △영남 패권은 실체가 있는가 △영남 패권은 친노 패권과 무슨 관계인가 △영남 패권과 호남 차별은 어떤 관계인가 등이 그것이다. 영남 패권의 실체를 둘러싼 설왕설래는 태양이 정말 존재하는지 논쟁하는 것과 비슷하다. 태양을 직접 발로 밟아본 사람도 없고, 그곳의 돌멩이 하나도 가져온 것이 없는데 태양이 실존한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한단 말인가? 매일 아침 동쪽하늘에 떠올라 대지를 비추는 저 존재가 우리의 착시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입증한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논리지만 현실에서는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사회의 주류이자 다수일 때 억지는 상식의 반열에 오른다. 영남 패권과 친노 패권의 존재를 부인하는 장은주와 정희준의 논리는 그렇게 왜곡된 상식의 전형이다. 1. 영남 패권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영남 패권의 증거는 너무나 많다.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2016년까지 55년 동안 김대중 집권 5년을 제외한 50년은 모두 영남 출신 대통령이었다. 그게 어떻게 영남 패권의 증거가 될 수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저 하늘에 빛나는 것이 어떻게 태양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느냐고 우기는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경제개발은 한정된 자원을 정부 주도로 영남 지역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 자원 배분을 기획하고 집행한 정부 권력의 수반이 대통령이다. 이런 방식의 자원 집중이 반세기 동안 이어져왔을 때 어떤 결과가 될까? 포항과 울산, 거제 등 영남 지역에 대규모 공단이 들어섰다. 거기 자리 잡은 산업체들은 괜찮은 일자리들을 많이 만들어냈고, 영남 주민들이 일차적으로 그 혜택을 봤다. 그 산업체 중 상당수는 지금 ‘신의 직장’이라고 불릴만한 급여와 복지를 자랑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산업체가 들어서고 사람이 몰리면 땅값이 오른다. 박정희 정권의 영남 개발이 아니었다면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을 땅들이 지금 거대한 공업단지를 끼고 ‘금싸라기’가 되었다. 국토교통부의 공시지가 자료를 보면 울산시 주택가의 경우 1990년부터 2015년까지 땅값이 2배가량 올랐다. 자료가 없는 1960년대 이후의 땅값 변화까지 추적한다면 어마어마한 상승곡선이 나타날 것이다. 반면 광주, 여수, 목포 등 호남 주요 도시의 땅값은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소폭 하락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좋은 직장, 좋은 급여, 복지 혜택에 더해 보유한 자산의 가치 즉 땅값도 오른다. 신분 상승의 황금열쇠를 움켜쥐었다는 의미이다. 자녀들을 서울로 보내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 해외유학도 일반화된다. 스펙 경쟁에서 앞서가는 것이다. 그것뿐인가? 대통령부터 정부 부처 실무자까지 영남 출신 선·후배, 동료들이 끌어주고 밀어주고 다독여준다. 박정희 정권 이래 반세기 동안 정부 고위직 인사 때마다 되풀이되는 공방이 있다. “왜 영남 출신이 이리 많으냐?”는 비판에 “능력 위주로 인사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는 반론이 그것이다. 하지만 공무원의 역량은 얼마나 중요한 업무를 경험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공무원 경력 시작 단계부터 노른자위 보직을 경험해온 사람이 고위직에 오를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얘기이다. 박정희의 총애를 받았던 전두환은 영남 출신으로 구성된 하나회 멤버끼리 군부 요직을 릴레이 경주의 배턴처럼 주고받았다. 그리고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박정희의 총애가 전두환 이력의 키워드이다. 왜 능력 위주로 인사를 하면 영남 출신이 앞서나가는지 그 비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정부 주도로 국가적 자원 배분이 이루어진다, 그 정부 권력은 특정 지역 출신이 독점한다. 이 경우 그 지역 출신들이 국가 권력을 사유화하고 편파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 영향은 민간 분야에 반영된다. 그냥 반영될 뿐만 아니라 편향이 더욱 심화·고질화된다. 물체가 낙하하면서 가속도가 붙는 자연법칙이나 마찬가지다. 기업 성과 평가 사이트 가 2013년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국내 30대 재벌그룹의 사장단에서 영남 출신의 비중은 42%에 이른다. 서울과 경기·인천 출신을 합친 37%보다 훨씬 많다. 호남 출신은 6%로 영남의 7분의 1에 불과하다. 10대 그룹 중 호남 출신 사장이 한 명도 없는 그룹도 삼성, GS, 롯데, 한화, 한진 등 5개로 전체의 절반이다. 권력과 돈은 결정적으로 사회적 규정성을 갖는다. 영남 패권 위주로 사회 전반이 재편성되는 것이다. 학계, 언론, 문화계 등 선호도가 높은 영역일수록 영남 출신의 비중이 높다는 것은 구체적인 통계가 없어도 쉽게 인지할 수 있다. 국내 4년제 대학 교수의 절반 이상이 영남 출신이라는 얘기도 있다. TV 드라마 등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 영남 억양이 사실상(de facto)의 표준어 역할을 하는 현상도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선호도가 높은데도 영남 출신의 비중이 덜한 영역이 있다. 실력이 결정적인 변별력을 갖는 전문 분야가 그것으로, 법조계가 대표적이다. 그래서인지 역대 사법시험 합격자 수는 영남과 호남의 차이가 별로 없다. 하지만 이런 균형은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무너진다. 2014년 9월 현재 지법원장 및 고법원장 28명 중 영남 출신은 16명으로 전체의 57.1%에 이른다. 호남 출신들은 어디로 갔을까? 변호사가 되었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유난히 호남 출신들이 많은 이유이다. 법조계는 공무원 경력이 단절되더라도 변호사 개업이라는 탈출구가 있기 때문에 호남 출신들이 선호하는 직역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현상들이 영남 패권의 결과가 아니라면 무슨 이유일까? 가능한 대답은 하나다. ‘영남 사람들이 원래부터 우월하다’는 것이다. 영남 패권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대놓고 말은 못해도 마음속으로 믿는 것이 이것이라고 본다. 다만 저 ‘원래’가 유전적인 것인지 아니면 영남 지방 특유의 어떤 분위기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그 답변이 어떤 것이건 영남 패권의 존재를 부인하는 주장은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진다. 즉, 영남 사람들은 한반도 다른 지역 사람들과 인종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은 본인이 의식하건 못하건 일종의 인종주의적 가치관이다. 영남 패권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정말 이것인지 솔직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2. 친노는 영남 패권과 무슨 관계인가 프레시안 지상 토론에서 장은주는 영남 패권의 존재를 인정하며 심지어 그 본질이 인종주의라는 점에도 동의한다. 이것은 정희준과의 중요한 차이점이다. 하지만 장은주와 정희준이 공유하는 것이 있다. 영남 패권과 친노의 관계를 결사적으로 부인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두 사람이 이 논쟁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마지노선 또는 성역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노무현이 지역 문제의 해결을 본인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제로 설정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노무현이 생각하는 지역 갈등의 원인과 그 해법이었다. 노무현은 지역 갈등의 책임이 호남에 있다고 봤으며, 그 해결 역시 호남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봤다. 호남이 먼저 지역 문제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영남도 지역주의를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노무현은 2003년 8월 대구경북 지역 언론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지역 소외감이나 지역 갈등, 지역 감정 등은 정치인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주장하며 “92년 이전 30년 동안 대구 출신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국가의 자원을 주무를 때 진짜 호남을 소외시켰나?”라고 묻는다. 또 “국민들의 감시를 받고 견제를 받는 정권이 어느 지역을 지원하고 어느 지역을 소외시킬 수 있느냐.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영남 출신 대통령, 영남 권력이 호남을 차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남 패권도, 호남 차별도 없다는 주장이다. 노무현의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지역주의를 앞세워 무리한 요구(?)를 일삼는 호남의 명분과 정당성을 무너뜨리는 것이 개혁의 핵심이다. ‘호남 없는 개혁’이 그의 목표였고 ‘지역주의 극복’의 실제 내용이었다. 대연정 제안 당시 박근혜를 만나 ‘호남당이라는 말이 싫어서 민주당을 분당했다’고 한 발언에 그의 진심이 담겨있다고 봐야 한다. 대북 송금 특검과 민주당 분당, 대연정 제안 등도 그런 정치적 구상의 연장이다. 호남 정치의 위상과 상징성을 훼손하고, 호남 정치를 고립화하여 호남 대 반호남을 한국 정치의 기본 구도화하는 것이었다. 호남 포위 전략인 셈이다. 노무현의 이런 구상은 김영삼이 삼당합당을 통해 추구했던 정치 구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 결과는 영남 패권의 안정화와 영속화였다. 노무현의 이런 정치관은 유시민과 문재인 등 친노 정치인들에게 전승된다. 특히 노무현 집권 당시부터 친노 세력은 호남 유권자들의 표를 놓고 동교동계 등 호남 정치인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호남 정치 세력을 집요하게 부패 토호 세력으로 몰아가는 행동이 이런 요구에서 기인한다. 동교동계 정치가 지금 기준으로 봐서 투명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김대중의 장남 김홍일 전 의원조차 고문으로 장애인을 만든 시대에 정치자금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것은 정치를 포기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그보다 훨씬 개선된 환경에서 정치를 한 노무현이 친인척 비리로 자살한 것, 비리에 연루된 친노 정치인이 적지 않다는 것을 보면 친노 세력의 호남 정치 비난이 얼마나 뻔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친노는 호남 정치에 대한 모욕을 통해서만 정치적인 생존이 가능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딜레마이다. 호남 정치를 욕하면서 호남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노의 정치적 메시지는 호남 유권자에 대한 협박과 결합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 호남 사람들은 오랜 비하와 왕따로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심각하다. 친노는 그 약점을 파고든다. “너희들 왕따지? 우리까지 외면하면 너희들은 친구가 없지?” 이런 메시지이다. 유시민이 이 분야의 전문가다. 민주당에게 후보 단일화 압박을 가하면서 “우리가 당선은 못 시켜도 낙선은 시킬 수 있다”고 한 발언은 고전이라고 할 만하다. 유권자를 두려워해야 할 정치인과 정치세력이 유권자들을 협박하고,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의 눈치를 보는 세계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전도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러한 전도 현상이 바로 친노 패권의 본질이다. 친노 정치인이 몇이나 되느냐며 친노 패권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친노는 분위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패권(hegemony) 개념에 대한 오해이다. 패권은 숫자 개념이 아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수십 개여서 수퍼파워로 군림하는 게 아니다. 패권이란 다른 세력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힘을 말한다. 친노 정치인의 숫자가 소수이면서도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부터 당권까지 좌우하는 것이 친노 패권의 실체와 위력을 보여준다. 지난해 새정치연합의 2.8 전당대회에서 영남 권리당원은 8,678명에 대의원 2,605명이었고, 호남은 권리당원 14만 5,854명에 대의원은 영남보다 적은 1,927명이었다. 영남은 권리당원 3.3명 당 대의원 1명, 호남은 권리당원 75.7명 당 대의원 1명이었다. 영남 당원은 호남 당원에 비해 22.7배의 권리를 갖는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명색이 민주라는 이름을 단 정당이 표의 등가성이나 다수결 원칙조차 노골적으로 무시했던 것이다. 세계 정당 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이런 전도 현상을 영남 패권 말고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친노 패권이 영남 패권의 일부분이며, 그 영향력으로 제1야당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친노 언론과 운동권 원로들, 진보 성향 지식인 등이 친노 패권의 일부로 작용하지 않으면 이런 불합리가 그대로 덮여질 수 없다. 이명박 박근혜보다는 그래도 친노 세력이 호남에 더 친화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정부 고위직 인사나 예산 배정 등에서 친노 정권이 들어서는 게 호남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주장 자체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호남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의 대차대조표이다. 노무현 정권은 정부 고위직 몇 개와 예산 배정 등에서 혜택을 준 대가로 호남이 수십 년 동안 피 흘려 쌓아온 정치적 선택의 정당성과 명분을 결정적으로 짓밟았다. 얻은 것과 잃은 것, 어느 게 더 클까? 비유하자면 호남은 집 문서, 땅 문서, 선산까지 친노한테 다 넘기고 그 대가로 자장면 몇 그릇 얻어먹은 셈이라고 본다. 친노는 영남 패권이 수십 년 동안 공들여(?) 쌓아온 호남 차별과 혐오, 고립화, 악마화의 무기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정치세력이다. 정치세력의 실체는 그 깃발이 아니라 실제 언행을 통해 드러난다. 노무현과 친노가 호남 정치의 정당성을 부인하고 영남 패권의 안정화를 추구했다는 사실은 노무현 정권 이래 수많은 사례를 통해 드러난다. 이 명백한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판단력이 없거나 양심이 없거나 둘 중 하나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3. 정희준 주장의 허구성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토론의 경우 특정인의 주장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대립하는 의견의 기본적인 차이와 주장의 핵심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하지만 이 토론에서 정희준이 보여준 논리는 친노 세력의 위선과 억지의 샘플과도 같기 때문에 직접 언급하는 것이 토론의 진행에 효과적일 것 같다. 정희준은 영남 패권은 없고 서울 패권만 있다고 주장한다. 유태인이 월스트리트 아닌 텔아비브에 있으면 어떻게 패권을 행사하겠느냐며 유태인 패권은 없고 월스트리트 패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월스트리트가 없어져도 유태인의 패권은 존재한다. 필요하다면 월스트리트 아니라 미국의 다른 도시에도 비슷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 또 유태인의 패권은 월스트리트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전 세계에 걸친 네트워크가 유태인 패권의 핵심이다. 그런데도 유태인 패권이 아닌 월스트리트만 얘기한다는 것은 그 패권의 실체를 덮어주자는 얘기이고 그 동조자 역할을 하겠다는 얘기이다. 영남 패권도 마찬가지다. 서울은 영남 패권이 작동하고 기능하는 기지이자 메커니즘이다. 영남 패권이 국가 권력을 통해 대한민국의 자원을 편파 배분했다는 사실은 이미 지적했다. 이를 위해 권력의 중앙 집중화는 필수적이었다. 즉, 서울의 비대화는 영남 패권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정희준의 주장은 강도가 소지한 칼이 문제일 뿐, 강도는 문제가 아니라는 논리이다. 만일 일본이 다시 한국을 병탄해서 일본인들이 서울에서 총독이 되고 고위 관료가 되어 한반도를 지배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정희준은 “서울 패권이 문제지 일본인들이 왜 문제냐?”라고 할 셈인지 묻고 싶다. 정희준은 호남 패권, 광주 패권을 문제 삼는다. 김대중이 호남 지역의 지지를 받은 것을 두고 “김대중은 지역주의의 최대 희생자이자 최대 수혜자”라고 물 타기를 했던 영남 패권 논리와 100% 일치한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사람이 감옥의 방장을 한다고 해서 “너는 엉터리 수사의 피해자이자 최대의 수혜자”라고 말할 사람들이다. 호남 지역 GRDP 성장률이 저조한데도 광주는 전국 평균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는 걸 광주 패권의 증거랍시고 정희준은 말한다. 숫자와 통계는 전체 맥락 속에서 해석하지 못하면 기만과 왜곡의 도구가 되기 쉽다. 왜 호남 경제는 죽어가는데 광주는 활기가 돌까? 이유는 간단하다. 호남의 여타 지역에서 워낙 먹고살기 어렵기 때문에 그나마 정부 예산과 자원이 더 주어지는 광주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다. 이 현상은 호남 경제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 광주의 패권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정희준의 주장은 가난한 집안의 가장이 그나마 남은 돈으로 밖에 나가 구직 활동을 하는 것을 ‘아버지 패권’이라고 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대구는 왜 광주보다 GRDP 성장률이 낮을까? 영남은 굳이 대구로 몰릴 이유가 없다. 영남의 다른 지역에서도 어렵지 않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희준이 고심해서 올린 통계의 진짜 의미가 그것이다. 참여정부 인사의 호남 차별에 대한 증언을 두고 정희준은 왜곡이라고 단정한다. 정말 그것이 왜곡이라면 그 소문이 엉터리라는 것을 밝힐 데이터를 가져와야 한다. 하지만 정희준은 그냥 왜곡이라고 단정할 뿐이다. 소문에는 소문으로 대항하자는 전략 아닌지 묻고 싶다. 참여정부의 호남 인사차별에 대한 증언은 많다. 그 증언 상당수는 참여정부 관계자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정희준은 그런 증언보다 증거의 가치가 떨어지는 본인의 믿음만을 들이밀 뿐이다. 정희준은 문재인의 ‘영남 정권’ 발언도 왜곡한다. 별 뜻 없이 “부산 정권인데...”라고 했다는 식이다. 그게 아니다. 문재인은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와 신항 및 북항 재개발, 인사 등 정부로서는 거의 할 수 있는 만큼 부산에 신경을 쓰고 지원을 했다”고 분명히 밝혔다. 다른 지역보다 부산에 훨씬 특혜를 베풀었다는 것을 선언한 발언이다. 그 발언에 ‘인사’ 부분이 들어가 있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 대선 당시 부산 유세에서 문재인은 “세 번째 부산 대통령을 만들어달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정희준이 이건 또 어떻게 변명할지 궁금하다. 첫 번째 부산 대통령은 김영삼이다. 김영삼-노무현-문재인이 정치적으로 단일한 정체성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고백할 수 있을까 싶다. 정희준은 정동영을 찍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정동영을 찍었다는 사실이 정동영을 비난하는 소재로 쓰인다. 이건 어떤 기시감을 불러온다. 호남을 욕하는 사람들이 변명처럼 “실은 내 부모님이 호남 출신”이라거나 “내 친구에 호남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나는 정희준이 정동영을 찍어준 게 사실일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김대중과 김영삼이 대결한 1992년 대선에서는 누구를 찍었을지 궁금하다. 정동영 한 번 찍은 사실을 호남과 정동영을 공격하는 데 써먹는 사람이라면 지금처럼 호남 정치를 공격할 때 옛날 김대중을 찍은 사실을 묻어두고 침묵할 리 없을 것 같아서 하는 얘기이다. 정동영이야말로 영남 후보론의 본질을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영남 후보론은 수구 세력에 사로잡힌 영남 유권자들을 민주개혁 진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영남 출신 대통령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친노 정치의 핵심 명제 중 하나이다. 그 영남 유권자들에게 어느 날 영남 출신이 아닌 호남 출신 즉 정동영 같은 후보를 내세우면 어떻게 될까?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은 부산 29.9%, 울산 35.3%, 경남 27.1%의 득표를 했다. 정동영은 2007년 대선에서 부산 13.5%, 울산 13.6%, 경남 12.3%의 득표를 했다. PK 지역의 민주개혁 지지표가 절반에서 3분의 2 가까이 추락한 것이다. 정동영의 후보 경쟁력이 노무현에 비해 너무 뒤떨어져서 생긴 현상일까? 사실은 영남 후보론으로 끌어들인 영남 민주개혁 지지 표의 본질을 보여주는 현상 아닐까? 호남의 그것과 대조해보자. 1997년 대선에서 호남 지역 광역단체별로 김대중 지지율은 92~97% 수준이었고, 2012년 대선의 문재인 지지율도 86~92% 수준이었다. 큰 차이가 없다. 문재인에 대한 호남의 인식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문재인이 김대중만큼 탁월한 정치 지도자여서? 그렇게 믿고 발언해도 막을 수는 없다. 대한민국은 신앙과 전도의 자유가 있지 않은가. 영남 후보론은 영남 유권자들의 이기심과 지역주의에 영합하는 전략이다. 비유하자면 히로뽕 중독자에게 치료제랍시고 헤로인을 주는 셈이다. 노무현과 문재인의 사례를 보면서도 영남 후보론을 주장하는 것은 본인이 구제불능 수준의 히로뽕 중독자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히로뽕의 진짜 이름은 ‘영남 패권’이고 헤로인의 다른 이름이 ‘친노 패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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